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

    대한민국충청남도
      만해 한용운선생의 생가는 초가지붕을 얹었으며 방 두 칸, 부엌 한 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구조로 한용운이란 문패가 걸려있다. 댓돌이며 툇마루가 한없이 정겹고 우물과 장독대를 돌아 집 뒤 야산 언덕배기를 올려보면 적송과 조릿대가 자란다. 부엌 옆은 장작을 쌓아두는 헛간이고 사랑방 옆은 절구통과 맷돌이 보관된 헛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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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화번호
    • +82 41-642-6716
    • 영업시간
    • 09:00~17:00 ~ ()
    • 정기휴일
    • 매주 월요일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평일 휴무) / 1월 1일 / 설·추석 당일

    편의시설

    주차시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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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 여행 추천 - 메고지고
    출처 : ⓒ한국관광콘텐츠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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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안내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만해로318번길 83 (결성면)
    만해 한용운선생의 생가는 초가지붕을 얹었으며 방 두 칸, 부엌 한 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구조로 한용운이란 문패가 걸려있다. 댓돌이며 툇마루가 한없이 정겹고 우물과 장독대를 돌아 집 뒤 야산 언덕배기를 올려보면 적송과 조릿대가 자란다. 부엌 옆은 장작을 쌓아두는 헛간이고 사랑방 옆은 절구통과 맷돌이 보관된 헛간이다. 생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위패와 영정을 모신 만해사라는 사당이 있다. 1879년 이곳 성곡리에서 태어난 한용운 선생은 6세부터 성곡리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워 9세에 문리를 통달,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26세에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하였고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불교개혁운동에 일생을 바쳤으며 1944년 69세의 나이로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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